우리 책모임 '토독토독' 덕분에 알게 된 김창준님의 <함께 자라기>를 읽다가,

쿵 하고 가슴을 때리는듯한 문장과 맞닥뜨렸다.

 

 

"저는 뭔가 일이 끝나면 항상 회고라는 활동을 합니다. 연말에는 한 해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일 년 회고를 합니다.

내가 올해에 어떤 것을 했고, 어떤 것을 느꼈고, 어떤 교훈을 배웠는지 짚어봅니다.

(생략)

일 년 회고를 할 때 항상 되짚어 보는 것 중 하나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투자를 했냐 하는 것입니다.

소위 자기계발이라고 하는 것이죠.

자기계발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냐면, 현재 나에게 무엇을 투자했느냐가 1년, 혹은 2년 후의 나를 결정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올해 업무도 잘한 것 같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 같다면 1~2년 전을 잘 되돌아봅니다. 아마 그때 열심히 자기투자를 했을 겁니다. 반대로 올해 읽은 책도 몇 권 없고 새로 얻은 통찰도 없다면 지금 당장은 별 문제없는 것 같지만(예를 들어 올해 내 연봉은 만족스러우나)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분명 추락을 경험할 것입니다."

 

 

연말연시가 지난지 오래이고, 아직 반분기도 다 가지 않은 애매한 시점이기는 하나 이렇게 강한 모티베이션을 주입 받았을 때 헤치우는 것이 낫지 않나 싶어 슬쩍 작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의 리뷰를 해본다.

 

1. 연애

 

지난 한 해동안 나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연애 상태의 변화 아닐까.

오랜 연애를 끝내면서 처음에는 분노와 두려움, 슬픔이 나를 지배했지만 점차적으로 이해와 수용, 정신적인 성숙이 뒤따른 1년이었다.

그 감정의 흐름을 이끌어내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을 해왔다는 점이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길러주었고, 인간이나 연애를 바라보는 관점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었다.

처음 솔로가 되었을 때는 마냥 연애하기 싫었고 누군가를 믿는 게 무서웠는데, 이제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놓치지 않고 연애해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슬몃 든다.

 

 

2. 글쓰기

 

마침 오늘 '연애의 과학' 앱에서 실연과 같이 큰 상처를 받았을 때 그 감정을 객관하하여 돌이켜보는 행위가 아픔에서 벗어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글을 읽었다.

나에게 블로그 글, 그리고 마인딩 앱을 통해 실연과 그 이후 심경 변화를 정리해보는 과정은 바로 그런 치유의 효과를 주지 않았나 싶다.

목글 모임을 시작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알게 되고, 꾸준히 글을 쓰게 된 것 역시 나에게 자리 잡은 긍정적인 변화이다.

 

꼭 출판을 하거나 유명 블로그가 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규칙적으로 내 생각이나 마음을 기록해두고 싶다.

 

 

3. 건강

 

처음에는 더 매력적인 몸매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무턱대로 다이어트에 열중했지만

점차적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 나의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특히 당뇨와 간경화 때문에, 하고 싶은 사업을 마음껏 못해 답답해하는 아버지를 보니 나에게 주어진 건강이 아직은 버틸만할 때 더 관리하고 다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꾸준히 달리기를 하고, 근력 운동을 하고 (그러다 지금은 아파서 쉬고 있지만), 최대한 몸에 좋은 걸 먹으려고 노력하는 건 아마 앞으로 평생해야만 하겠지.

그리고 명상이나 글쓰기, 자기 반성과 객관화를 통한 마음 챙김과 스트레스 관리도 몸 건강 챙기는 것만큼이나 잘해야만 더 행복한 직장생활, 대인관계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4. 그 외

 

외국어를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스카이프 영어 회화 과외도 꾸준히 받고, JLPT 4급도 땄다.

덕분에 갑자기 잡힌 영어 면접이나, 일본에 여행 가서 일본어를 써야 하는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았다.

 

나 자신의 매력을 잘 알고 싶어서 헤어 스타일 컨설팅과 퍼스널 컬러 컨설팅도 받았고 둘 다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물론 컨설팅을 그대로 신청하기는 좀 귀찮다. 그래도 이제 드라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감을 잡았다.)

 

퀸 덕질을 미친듯이 하다가 드럼을 배우기 시작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에 맞춰 반주할 수 있게 되었고

힘들고 답답할 때 스트레스를 배출할 수 있는 수단을 찾고 나 스스로를 더 좋아할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함께 해외 여행도 다녀오고

연말 공연 감상을 통해 잊고 있던 클래식 음악의 세계도 다시 느껴보고

연기 수업도 듣고 윈드 서핑도 배우고 한라봉청도 만들고 롤 직관도 가고 기부도 하고 신규 광고주도 만났다.

 

재밌고 인사이트를 주는 책들도 참 많이 읽었다.

 

'제가 좀 숫자에 약해서',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 행복의 기원', '혼자 쉬고 싶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새내기 유령', '모든 관사를 설명합니다.', '질문이 답을 바꾼다', '파는 것이 인간이다' 등등...

 

 

5. 결론

 

종합적으로, 심리적인 측면에서든 외적인 측면에서든 많이 달라지고 성장할 수 있던 한 해였다.

약 반년 전 썼던 '갑작스러운 이별 그리고 이별 이후의 삶'이라는 글에서 전남친을 다시 만나게 된다면 '덕분에 더 좋은 자신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의문스러워 했는데,

지금 만약 만난다면 아무 사적인 감정 없이 웃으며 저 말을 할 수 있을거라 자신한다.

그리고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다고도.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면 떠오르는 인상이 있다. 

 맥북을 들고 다니며, 카페나 휴양지에 우아하게 앉아 정신없이 일에 집중한다.

 나머지 시간은 자기계발이나 취미를 하며 여유롭게 지내는, 그러면서 돈은 또 잘 버는 그런 삶.

 

 디지털 마케터라는 직무를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디지털 노마드'로서 언젠가 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프리랜서 혹은 원격근무자로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환상.

 같이 패캠 수업을 듣는 다른 사람들도, 이 디지털 노마드라는 컨셉에 꽤 관심이 많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막상 디지털 마케터, 그 중에서도 사람과 대면하여 일할 필요가 적은 퍼포먼스 마케터가 되니

 노마드라는 위치가 결코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일단 어디 가서 일을 해도 괜찮으니, 일과 사생활의 분리가 어렵다. 

 '제가 지금 오피스가 아니어서요' 라는 변명이 통하지 않는 디지털 마케터의 업무란...

 결국 여유롭게 맥주 한 잔 하러 나갔다가도, 고객사의 요청에 황급히 노트북을 켜야 하는 상황이 꽤나 잦다. 

 

 예전에 어느 동호회 회식 자리에 갔다가, 광고주가 급하게 소재 추가를 해달라고 요청해서 술집 한 구석에서 업무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아마 평생 대행사 업무를 한 번도 해보지 않았을) 꼰대 분의 발언에 속이 울컥했다.

 나라고 해서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닌데... 일을 못해주겠다는 말을 할 수 없는 직업, 그리고 을로서의 입지 때문에 그런건데...

 

 또한 일주일 7일, 하루 24시간 라이브되는 디지털 광고의 특성 때문이라도 디지털 마케터에게 마음 편히 쉴 날은 없다.

 어느 날은 효율이 저조하다가도, 어느 날은 또 효율이 너무 좋아서 예산이 과소진되고... 

 틈틈히 모니터링해서 광고가 반려가 나지는 않는지, 랜딩 페이지는 잘 가지는지

 정말 아기를 다루는 엄마처럼 내가 맡은 캠페인을 관리해줘야 하는 게 디지털 마케터의 삶이다.

 

 직무 자체는 참 재미있고, 안정된 걸 지루해하는 나에게 어울리는 다이나믹한 업계이지만

 가끔은 이런 쉴새 없는 업무 싸이클로 번아웃이 느껴질 때도 있다.

 과연 디지털 노마드, 행복한 삶일까? 누군가 나에게 디지털 노마드로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하면 이젠 고개를 갸우뚱할 것 같다.

요새 어딜가나, 특히 광고에서 자주 보이는 단어가 있다.

 

'인싸'.

 

'XX에서 인싸되는 법'

'요즘 인싸들 사이에서 대세'

'인싸되려면 필수'

'인싸템', '인싸춤', '인싸용어', '인싸포즈' '인싸되는법' 등등등...

 

인스타그램에서 '인싸'로 검색해본 결과

 

인싸의 어원인 'Insider'는 보통 어떤 무리에서 친구가 많고, 사람들과 두루 친한 핵심 멤버를 의미한다.

때문에 보통 인싸들은 광범위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멋짐'을 추구하고,

대중적 트렌드를 최대한 팔로우업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1인 크리에이터 시대,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아싸'를 택하기보다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무리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인싸'를 택한다는 것.

그만큼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남들과 달라 보일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런지.

 

누군가 '인싸'가 되길 택하든 '아싸'가 되길 택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인싸가 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자사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구입해야만 인싸가 될 수 있다고 유혹하는 마케팅 수단은 같은 마케터로서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정당당하게 자사 물건/서비스의 셀링 포인트로 어필해야지, 그놈의 '인싸타령'은 1절만 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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